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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위로
야생의 위로
  • 저자 : 에마 미첼 지음 ; 신소희 옮김
  • 출판사 : 심심
  • 발행연도 : 2020년
  • 페이지수 : p
  • 청구기호 : 182.3-ㅁ936ㅇ
  • ISBN : 9791156758174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박주용
 

끝날 것 같지 않았던 2020년의 여름도, 정신을 차려보니 끝이었다. 아직 수많은 태풍이 여름을 보내지 않겠다며 끊임없이 밀려들어 오지만, 그래도 나는 달력에 적힌 91일을 보며 드디어 끝났다.”라고 말했다. 누군가 내게 어려운 계절이 있냐고 물어보면, 나는 주저 없이 여름을 꼽는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은 활동반경을 최소화해 몸집을 불리고, 그치지 않는 장마로 우울해진 감정은 쉽사리 타인을 내 영역 안에 들이기 어렵게 한다. 그래서 더욱 집 속으로 깊이 파묻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에어컨 바람만 쐬고 있는 나는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 자책하며 매번 다음 날 아침이 오는 걸 두려워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때론 그 감정을 가만히 두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여름만 되면 떠난다. 바다로, 산으로, 가장 가까운 자연으로. 이는 내 속의 검은 개(*책 속 우울증의 다른 표현)에게 먹히지 않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에마 미첼은 25년간 우울증에 빠져 있다. 가벼운 무기력증부터, 심한 자살 충동까지 느낀 그녀는 죽음의 직전 도로 중앙분리대에서 자라나는 조그만 묘목들에 눈길을 보내며 살아갈 위안을 얻었다. 그래서 살아가겠다 결심한 이후 치료계획을 세우며, 우울증을 극복하려고 하기보다는 곁에 두고 함께 지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도움을 받는 건 없다. 그저 자연으로 나가 걷고, 기록하고, 그릴뿐이다. 이 책은 결국 우울증과 함께 걸어가는 이의 열두 달 자연 기록물이다. 저자는 무르익은 화살나무 열매를 관찰하며 희열을 느끼고, 검은 수레국화 이삭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자는 무당벌레를 보며 멜랑콜리를 걷어낸다.

 

다음 날은 기분이 좋다. 우울증과 함께 산다는 게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인정하면서 마음이 한층 가벼워진 것 같다. 나는 애니에게 목줄을 채워 오두막 뒤쪽 숲으로 걸어간다. (중략)나는 발길을 멈추고 산사나무꽃을 살펴본다. 산사나무는 일 년의 네 계절 중 세 계절 동안이나 내 마음을 위로하고 마음속 어둠을 쫓아 내줄 힘을 지닌 것이다. (176~177p.)

 

다만 저자와 독자가 살아온 환경이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영국의 풍광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쉽게 위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무더운 여름 위로를 받고 싶어 펼친 이 책에는 그 흔한 힘내라는 말 한마디조차 없었고, 그저 걸으며 본 바위 웅덩이와 물고기, 새의 깃털과 식물 따위만이 그림과 사진으로 존재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저자가 자연의 위로를 받으며 여전히 우울증과 공생하고 있다는 것을 잘 표출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기록한 것 중에 특별한 것은 없다. 집 주변을 거닐며 관찰한 자연물에 당신도 위로받을 수 있다고 전할 뿐이다. 나 역시 수년간 여름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자연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의 바다에서 보았던 소라게, 숲속 캠핑에서 만났던 다람쥐, 태안 갯벌에서 만난 바지락이 여름 즈음에 생각나는 건 모두 집 밖으로 뛰쳐나가 걸었기 때문이다. 아직 검은 개에게 깊숙이 침식당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더 나은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이 책을 권한다.

 

저자 소개 (저자: 에마 미첼)

동식물과 광물, 지질학을 연구하는 박물학자. 디자이너이자 창작자,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다.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했다. BBC에서 발간하는 잡지 컨트리파일Countryfile에 계절 프로젝트를 연재했고, 동명의 TV 프로그램과 산책Ramblings, 여성의 시간Woman’s HourBBC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가디언Guardian컨트리리빙Country Living, 브레스Breathe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며 자연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인간의 정신 건강에 주는 이점에 관해 이야기했다. 빅토리아&앨버트Victoria&Albert 박물관과 케임브리지대학교 식물원에서 자연물을 활용한 창작 수업을 하고 있다. 10만 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가진 그는 관찰하고 수집한 자연물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활발히 나눈다. 저서로 겨울나기Making Winter와 이 책 야생의 위로가 있다.

목차

머리말 _ 숲과 정원에서 찾은 치유의 방식

 

OCTOBER · 10_ 낙엽이 땅을 덮고 개똥지빠귀가 철 따라 이동하다

NOVEMBER · 11_ 햇빛이 희미해지고 모든 색채가 흐려지다

DECEMBER · 12_ 한 해의 가장 짧은 날들, 찌르레기가 모여들다

JANUARY · 1_ 무당벌레가 잠들고 스노드롭 꽃망울이 올라오다

FEBRUARY · 2_ 자엽꽃자두가 개화하고 첫 번째 꿀벌이 나타나다

MARCH · 3_ 산사나무잎이 돋고 가시자두꽃이 피다

APRIL · 4_ 숲바람꽃이 만개하고 제비가 돌아오다

MAY · 5_ 나이팅게일이 노래하고 사양채꽃이 피다

JUNE · 6_ 뱀눈나비가 날아다니고 꿀벌난초가 만발하다

JULY · 7_ 야생당근이 꽃을 피우고 점박이나방이 팔랑거리다

AUGUST · 8_ 사양채잎이 돋고 야생 자두가 익어가다

SEPTEMBER · 9_ 블랙베리가 무르익고 제비가 떠날 채비를 하다

 

옮긴이의 말 _ 평범한 장소에서 발견한 강렬한 위안

이 책에 나오는 생물들의 이름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