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방승현
<걸어서 세계속으로>, <세계 테마기행>,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텐트 밖은 유럽>. 꾸준히 사랑받는 이 프로그램들의 공통점은 '여행'을 주제로 한다는 것이다. TV, OTT, 유튜브 등 다양한 방송매체에서 빠질 수 없는 인기 콘텐츠로 자리 잡은 ‘여행’. 그렇다면 여행은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여행을 의뢰한 분들의 사연은 각양각색입니다. 그렇지만 심각하게 고민하는 여행을 원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환한 웃음을, 반짝반짝 빛나는 추억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모두 바로 이걸 원합니다.” (p.244)
위 대사와 같이 여행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풍경과 웃음, 빛나는 추억을 선물한다. 일상 속 무심하게 지나쳤던 길가의 꽃들도 여행지에선 더욱 아름답게 보이고, 퇴근길이라면 귀찮기만 했을 소나기조차 여행지에선 잊지 못할 추억으로 미화되어 기억되곤 한다. 여행을 통해 치유받았던 기억, 행복했던 추억 때문일까 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여행을 꿈꾸곤 한다. 하지만 떠나고 싶을 때 아무 걱정 없이 떠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시간, 비용, 건강 등 우리를 일상에 묶어놓는 수많은 제약 속에서, 우리는 결국 다른 누군가가 대신 떠나주는 랜선 여행으로 위안을 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일본 작가 하라다 마하의 소설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의 주인공 오카 에리카는 그런 이들을 위해 대신 여행을 떠나는 여행 대리인이다. 한때 인기 아이돌이었으나 한순간의 실수로 하나뿐인 고정 방송마저 폐지된 상황에 놓인 오카 에리카에게 어느날 특별한 의뢰가 들어온다. 건강 문제로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딸을 대신하여 여행을 해달라는 것. 이 의뢰를 시작으로 오카 에리카는 여행 대리인이라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저마다의 이유로 직접 여행할 수 없는 이들의 사연을 안고 전국 각지를 여행하는 동안 주인공은 어느새 단순한 여행 대리인이 아닌 마음을 전달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찾아가게 된다. 이 소설 속 여행의 의미는 단순한 이동이나 여가 활동이 아닌,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위로하는 수단인 것이다.
이 책에는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한 긴장감 넘치는 장면도, 깜짝 놀랄 반전도 없다. 하지만 잔잔하고 따뜻하게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 공감, 그리고 위로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사람 사는 따뜻한 이야기가 그리운 사람이라면 오카 에리카의 여정에 동행해 보기를 권한다.
저자 소개 (저자: 하라다 마하)
간사이가쿠인대학 일본문학과와 와세다대학 미술사과를 졸업했다. 마리무라미술관을 거쳐 모리미술관 설립 준비위원으로 참여했으며 뉴욕현대미술관에서도 일했다. 프리랜서 큐레이터로 활동하던 2005년 《카후를 기다리며》로 제1회 일본 러브스토리 대상을 수상하며 2006년 작가로 데뷔했다. 2012년 화가 앙리 루소의 미공개 작품을 둘러싼 아트 미스터리 《낙원의 캔버스》로 제25회 야마모토슈고로상을, 2013년에는 모네, 마티스, 세잔 등 화가의 삶에 상상력을 더한 소설집 《지베르니의 식탁》으로 《낙원의 캔버스》에 이어 2년 연속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다. 2016년 발표한 《암막의 게르니카》는 반전의 상징인 피카소의 작품을 둘러싼 서스펜스로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으며 제9회 R40 서점대상을 수상, 2017년 《리치 선생님》으로 제36회 닛타 지로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밖의 저작으로 《오늘은 일진도 좋고》, 《키네마의 신》, 《별 하나 바라는 기도》, 《흔들려도 가라앉지 않는》, 《리볼버》,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2》 등 다수가 있다.
목차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