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손지훈
책의 맨 끝. 작가의 말은 "사람은 죽어서 무엇이 되며 어디로 갈까."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책 「좋은 곳에서 만나요」는 이런 작가의 생각에서 비롯된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연작소설이다.
책에 실린 6개의 이야기는 6개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되어 살아남은 자들이 아닌 죽은 자들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아버지의 납골당에 가기 위해 탄 택시에서 벌어진 사고로 죽은 딸의 이야기가 첫 작품 <오리배>의 이야기라면, 그 택시를 몰던 운전기사의 이야기가 두 번째 작품 <심야의 질주>이다. 이렇게 스쳐 가는 인물과 인물들의 이야기가 얽히며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죽었다'라는 설정이 더해져서인지 각 인물이 말하는 내용은 좀 더 진심으로 느껴진다.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속이거나 감출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죽음은 살아 있는 상태가 아님을 뜻할 텐데 책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쩐지 죽음 이후도 삶의 한 부분처럼 느껴진다. 하긴 사후 세계란 것에 수많은 상상을 더해 삶으로 가져온 것은 종교를 위시로 우리 인류 문명의 오랜 역사이니 이런 식의 사고는 낯설지 않다. 작가는 생명이 죽는다면 무엇이 되며 어디로 가는지를 화두로 이 이야기들을 써왔다. 이야기가 얼마나 과학적이고, 논리적 인지 따지는 것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를 상상하는 인간의 마음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하는 고민을 작가가 어떻게 풀어냈는지를 지켜봤으면 좋겠다.
죽은 다음에도 이어지는 마음이나 이야기가 있다면 '왜'인지, 죽음은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죽음이 죽은자에게는 어떻게 다가올지를 상상하고 느껴보는 것이다. 책 안에서는 결코 공감할 수 없는 부분도, 끄덕여지는 마음도, 다 알 순 없지만 알 것만 같은 이야기도 사람에 따라 존재할 것이다.
“그 순간, 어떤 생각 하나가 화살처럼 내 머릿속을 꿰뚫고 지나갔다. 정민이 죽으면 나와 같은 것이 된다.
···· 어떤 모습으로든 정민은 분명 온전히 떠나지 못할 것이고 나 같은 것이 되어서 나를 만날 것이다. 이 몸이 언제 어떻게 소멸하는지는 몰라도 그때까지는 함께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영원히.”
-p.250~251 <영원의 소녀 中>
올해 4월 군자동도서관에서 진행한 백수린 작가 북토크에서는 작가와의 대담 말고도 작가가 준비한 짧은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소설을 우리는 왜 읽고 쓰는가?'라는 주제의 강연은 평소 막연하게만 느끼고 생각하던 소설 읽기의 필요성과 즐거움에 관한 상세한 관찰이었다. 최근 몇 년 광진구립도서관에서 진행한 여러 소설가의 강연에서도 소설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조금씩 다르면서도 같았다. 소설을 읽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수 있고, 거기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분명한 건 소설에는 소설만이 담을 수 있는 허구이면서도 무엇보다 '삶'에 근접한 무언가가 있다는 게 아닐까 싶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소설가 헤르만 브로흐(Hermann Broch)의 말을 끝으로 이번 소설 「좋은 곳에서 만나요」에 관한 글을 줄이고자 한다.
"소설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소설만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 저자 소개 (저자: 이유리)
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브로콜리 펀치」, 「모든 것들의 세계」, 연작소설 「좋은 곳에서 만나요」, 짧은소설집 「웨하스 소년」 등을 펴냈다.
♣ 목차
오리배
심야의 질주
세상의 끝
아홉 번의 생
영원의 소녀
이 세계의 개발자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