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김지현

우리가 아는 뱀파이어는 드라큘라라고도 불리며, 주로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고, 해가 저문 뒤 밤에만 활동하며 사람들의 피를 양분 삼아 살아가는 흡혈귀이다. 이 괴생명체는 각종 문학 작품과 미디어에 다양한 소재로 이용되고 있는데, 고전소설로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있고, 영화로는 <트와일라잇 시리즈>, 박찬욱 감독의 <박쥐>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드라마, 웹툰, 뮤지컬 등의 장르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매혹과 공포를 동시에 겸비한 존재이다. 그런데 저자는 말한다. '뱀파이어'는 '영화'와 동일한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뱀파이어'를 통해 '영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이다.

정신의 세계에 물질의 옷을 입힌 것. 그가 뱀파이어가 아닌가?

그에게는 또 다른 이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영화'이다.

-p.102-

저자는 '뱀파이어'와 '영화'가 이중적 질료성을 공통점으로 가진다고 말한다. 둘 다 실체(질료)없이 허구 안에서만 존재하지만, 자신의 차원을 만났을 때 육체(질료)를 입고 그것을 본 사람들은 이들을 '현실'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뱀파이어는 빛을 받으면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실체 없는 존재이지만, 밤이라는 특수한 차원을 만나면 육체를 가지고 감정을 지닌 존재로 돌아오며 ‘인간’과 교류하고 그들 속에 섞여 들어간다. 영화는 물리적 접촉이 불가한 실체 없는 커다란 이미지에 불과하지만 스크린이라는 무대 위에 이미지를 투영하면 순간적으로 존재를 부여 받아서 사람들은 영화를 보는 동안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마치 '현실'인 것처럼 느끼고 반응한다. 이러한 현실과 비현실의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사람들을 매혹하는 존재가 바로 뱀파이어와 영화인 것이다.

그러나 그 인물이 영화관 안에서 스크린 위에 투영되는 순간에, 우리는 그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순간적으로 존재를 부여하는 것이다. 비일상적 존재의 비일상적 공간 안에서의 현실화, 일상적 존재로의 환원. 뱀파이어는 그래서 영화 자신이며 관객들은 뱀파이어의 흡혈의 대상, 전이의 대상이다.

우리는 그의 최면에 걸려 헤어나지 못한다.

-p.115-

뱀파이어와 영화의 또 다른 공통점은 '매혹'이다. 두 존재 모두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고,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자신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십자군 전쟁 후 폐허 속에서 탄생한 '악'을 대표하는 '뱀파이어'가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빛'의 세계인 '영화'에 전이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