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정찬종
어떤 공간이건 그 공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 느낌, 감각이 있다. 개인의 경험이든, 미디어의 환상이든, 상업적 프레임이든. 아쿠아리움을 떠올리면, 바닷속 생물들이 큰 수조에서 유영하는 모습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연인과 가족들, 바다 동물과 교감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그려지며 몽실몽실한 행복감이 든다.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아쿠아리움, 문을 닫은 그 공간에서 일하는 주인공 토바와 똑똑한 문어 마셀러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코너를 돌아 인사를 계속했다. 굿나잇 참치, 도다리, 가오리야. 굿나잇, 해파리, 해삼아. 굿나잇, 불쌍한 상어야. 토바는 수저 안을 맴도는 상어들에게 공감을 넘어선 감정을 느꼈다. 숨이 멈춰버릴까 봐 계속해서 움직여야만 하는 그 심정, 여전히 바위 뒤에 몸을 숨긴 문어가 보였다.
불룩한 몸체 일부가 죽 튀어나와 있었다. (본문 24p)
아쿠아리움의 나이 많은 직원 토바는 아픔을 간직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그리고 그 다양한 일들 속엔 인간 세상을 통달한 문어 마셀러스가 있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감금일지”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이 문어의 시선 속 사람들은 바보 같지만, 주인공 토바는 다른 사람과 다르며 그 때문에 토바를 돕기 위해 애쓴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수조 안에서 문어의 시선이 신선하고, 그들이 겪는 이야기가 안타깝고 종내 따뜻하다.
감금 1,352일째 – 수조로 되돌아오는 여정은 느리고 힘들었다. 시멘트로 된 복도를 따라 내 몸을 끌어당기며 몇 번이나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다시는 가리비를 맛볼 수 없을 것이다. 다시는 차가운 유리벽에 빨판이 달라붙을 때의 기분을 느낄 수 없고, 그녀의 팔목 안쪽에서 전해지는 인간의 온기를 경험할 수 없고, 결국 내수집품 속 보물도 만질 수 없을 것이다. 오늘 밤 죽는다면, 이 여정이 가치 있는 것이었을까?
물론이다. (본문 391p)
“소설은 감정의 테마파크다.”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김영하 작가의 말이다. 놀이동산에 가면 다채로운 놀이기구를 타고 나오는 것처럼 소설에 몰입하면 다채로운 감정을 체험하고 나올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감정의 아쿠아리움 같다. 주인공 토바와 문어, 캐머런 등 다양한 인물의 시각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감정을 겪고 공감하고, 그러다 이내 책을 덮으면 행복한 추억처럼 따뜻함이 남는다.
작가 셸비 반 펠트는 책 서두의 한국 독자에게 전하는 말에 책을 집필한 당시는 펜데믹 기간이었으며 외로움, 고립감 등의 감정에 관심이 많았고, 책 속 등장인물 또한 그 영향으로 어딘가에 얽매여 있는 인물들이라고 한다. 작 중 문어와 바다 생물들은 물리적으로 수조에 갇혀있지만, 사람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대개 상황과 마음, 감정 혹은 기억 속에 갇혀있다. 문어의 감금일지를 읽으며,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얽매여있는 것에 해방되길 바라며 책을 권한다.
♣ 저자 소개 (저자: 셸비 반 펠트)
2022년 미국에서 단연 눈에 띄는 화제의 인물이다. 그의 첫 소설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은 2022년 5월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아마존에서 뽑은 올해의 책, 굿리즈 2022 최우수 소설상 후보에 올랐다.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에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지면서 BBC 라디오 북클럽 도서로 선정되었고, 저자는 제나 부시가 진행하는 NBC 간판 프로그램 「Today Show」에 출연하기도 했다. 생방송 현장에서 제나 부시는 “『파이 이야기』 이후 이렇게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목소리를 지닌 책은 처음이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태평양 북서부 지역에서 태어나 자란 저자는 현재 남편, 두 아이와 함께 미국 시카고에서 살고 있다.
♣ 목차
한국 독자들에게
감금 1,299일째
은화 모양의 흉터
감금 1,300일째
가짜 쿠키
감금 1,301일째
사랑이 넘치는 웰리나 이동주택 마을
감금 1,302일째
우울한 6월
여자 뒤를 쫓다
감금 1,306일째
새끼 독사는 특히나 위험하다
감금 1,307일째
이가 큰 양반
감금 1,308일째
해피 엔딩
감금 1,309일째
그럼 마라케시는 빼고
부가티와 금발
감금 1,311일째
평생 떠오르지 않는 것은 없다
감금 1,319일째
영화배우는 아니지만 해적 정도는 될지도
엄밀히 말해 거짓말은 아닌 이야기
짐 있어요?
망가졌지만 충성스러운
하우스 스페셜
감금 1,322일째
초록색 타이츠
그리 멋진 일은 아니에요
감금 1,324일째
다친 사람에게 마음이 약해지는 편이에요
묘비명과 펜
양심이 우리 모두를 겁쟁이로 만든다
뜻밖의 일들이 벌어질 수 있어
감금 1,329일째
왼쪽으로 핸들을 크게 꺾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감금 1,341일째
마티니 세 잔이 밝힌 진실
잔교의 그림자
여자가 있었다
예상치 못한 보물
감금 1,349일째
가계도 나무
불가능한 종이 걸림
감금 1,352일째
부도수표
공짜 음식의 허점
데이트는 아니야
진귀한 물건
생일 카드 하나 안 보내고
만약에
특별한 유대감
대담하고도 뻔뻔한 거짓말
SOB
새로운 목적지
이른 도착
난처하게 만들다
감금 1,361일째. 아, 지금 이럴 때가 아니잖아? 찾아야 할 반지가 있는데
빌어먹게 똑똑한 천재
장어 반지
물이 완전히 빠져 나가고
너무도 많은 것들이
값비싼 로드킬
달라호스
자유 1일째
어쨌거나
감사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