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손지현
어릴 적, 한 화가의 전시회를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남아 있다. 그의 작품은 기술적으로 기교가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각 그림에서 전해지는 감정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화가가 겪었던 아픔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었고, 그때 필자는 예술이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넘어 사람의 내면과 소통하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격예술은 또한 창작자의 성숙과 관련이 깊다. 한 시인의 작품을 읽었을 때, 그 시는 그의 고통을 넘어 독자의 마음에 감정을 전하는 교감의 장이 되었다. 시인이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느껴지면서, 마음이 동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처럼 인격예술은 창작자의 삶이 녹아든 결과물로, 나와 다른 이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인격예술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좋아하는 친구가 만든 음식, 정성스럽게 꾸며진 정원, 그리고 감동적인 음악이 그렇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과 손이 닿아 완성된 작품이다. 그리하여 인격예술은 우리 삶의 여러 면에서 존재하며,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 또한 인격예술은 고통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힘을 준다. 예술가가 그 고통을 작품으로 승화시킬 때, 우리는 그 작품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돌아보고 치유의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예술은 우리에게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다.
이 책은 서예가인 저자의 인격예술이 담긴 책이다. 서예는 단순한 글쓰기의 행위를 넘어, 글씨 속에 인격을 담는 매력적인 과정임을 저자는 생생하게 전달한다. "글씨가 곧 그 사람이다"라는 저자의 좌우명과 가치관 아래, 독자는 서예가의 삶과 철학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작가는 글씨를 쓰기 전 먹을 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탐구한다고 한다. 마치 운동선수가 준비운동을 하듯, 서예가는 먹을 갈며 마음을 수양하고 들여다 본다. 이처럼 글씨는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니라, 그의 존재를 반영하는 인격예술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글씨 예술은 나였다. 사람들은 글씨처럼 서예가를 사랑해 주었다. 인격적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습까지도. 서예는 글씨 예술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 사람의 서예가 바로 그것이다.” (p.144)
저자는 정해진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한 작가의 과감하지만 질서가 있는 글씨는 저자의 내면을 드러내며 독자에게 여운을 남긴다. 이 책은 서예가의 작업을 단순히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을 통해 우리의 일상과 삶의 가치를 되새겨보게 한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하다.
♣ 저자 소개 (저자: 윤영미)
대학과 대학원에서 서화예술을 전공했다.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것도 한자였고, 세상에 먼저 발표한 전시도 한자 서예였지만 공기처럼 숨 쉴 수 있는 한글로 심장을 파고드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20년 동안 서예 선생으로 살다가 오십을 앞두고 한글 서예가로 세상에 나왔다. 개인전 완판작가라는 명성과 함께 국내 최초로 기획한 글씨콘서트는 대공연장 전좌석을 매진시켰다. 튀르키예에서 개인초대전을 열었고 중국을 돌며 글씨 버스킹을 했다. 그의 서예는 전시가 아닌 공연이며 온몸을 쓰는 퍼포먼스다.
경상국립대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에서 강의하고 경남교육연수원에서 교사들에게 한글 서예의 아름다움을 선보이고 있다. ‘글씨가 곧 그 사람이다’라는 뜻의 ‘서여기인書如其人’이 좌우명이다.
♣ 목차
여는 글_서여기인
1. 무엇을 위하여 삶을 견디는가
벼루에 먹을 가는 시간
패기가 모든 것의 시작이다
가두려 하지 않고, 얽매이지 않고, 같아지려 하지 않고
여백을 즐긴다는 것
수월해지면 천천히 갈 수 있다
계절은 한 뭉텅이로 하룻밤처럼 지나가고
근육은 마음보다 정직하다
이별은 과거의 나와 헤어지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나의 공간
2. 금기를 깨면 편안해진다
인생의 진로를 변경하는 것보다 황홀한 자유는 없다
단순하게 사는 게 복이다
봉인된 에너지를 풀어 주다
두려움이 느껴지는 쪽으로 향한다
계절은 심장에서 먼저 온다
마음이 정화되는 순간
불안하지 않은 안전한 고독
줏대가 없기에 견딜 수 있다
지켜 준다는 건 믿어 주는 것이다
아무 일 없이 산다는 건 특별한 일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
지상에서의 마지막 로맨스
3.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이 내 것이다
‘삐뚤한’ 것들의 균형
무위자연
낯선 서예의 시대
서로를 알아보는 말없는 대화가 황홀하다
‘첫’이라는 흥분이 일으키는 증상
당당하고 뻔뻔해져야 한다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
‘아님 말고’ 정신
나는 왜 한글 서예가가 되었는가
붓으로 쓰는 한글
기회를 만드는 것도 예술이다
서예가의 심장이 엄숙해지는 시간
사랑은 내 욕심을 빼는 것
사람에 대한 최고의 욕심은 서로 잊지 않는 것
4. 고독하기에 자유로울 수 있다
지랄 총량의 법칙
강박에 넘어가면 강박이 사라진다
타인의 향기가 우울을 잠재운다
예술보다 인생이 중요하다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곳, 집
평화로운 공존
세상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건 멋진 일이다
초심이 흔들려야 나도 바뀌고 세상도 바뀐다
내려놓는 연습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다
참 쉬운 사람
세상에서 가장 만만치 않은 사람
굽은 길을 따라 흐르는 시절 인연
서예가와 성직자
닫는 글_뜨거운 심장을 쥔 듯 두근거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