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김영의
“가와타 후미코가 만난 재일 여성들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인이 아니다. 그가 만나고 기록하지 않았다면 그저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 보통의 재일 여성들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삶 속에 거대한 재일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p.339 ‘옮긴이의 말’에서 인용
책장을 펼치는 순간, 마치 할머니들이 옆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은 생생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린 시절 낯선 일본 땅으로 건너가 노동자로, 어머니로, 때로는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가장으로 살아야 했던 여성들. 이들의 삶은 단순히 과거의 슬픔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잊고 있었던 역사를 다시금 되살아나게 한다.
일본 언론인 가와타 후미코는 일본군 ‘위안부’ 최초 증언자인 배봉기 할머니와의 만남을 계기로 재일 여성 29명의 생애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책에는 강제노동, 원폭 피해, 민족차별, 성노예제 같은 참혹한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도 삶을 이어갔던 여성들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고통의 재현은 아니다. 때로는 가슴이 먹먹할 만큼 아프지만, 그 속에는 웃음과 유쾌함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치열하게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이는 단순히 피해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생존자로서의 증언이 담긴 굳센 외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독자는 책을 읽으며 때로는 무거운 마음으로 과거를 직면하게 되고, 때로는 그들이 전하는 유머와 삶의 자부심에 미소를 짓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의 기록이 아니며, 과거를 직면함으로써 우리가 지금 무엇을 기억하고,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되묻는 질문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같은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역사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할머니의 노래>를 통해 함께 생각하고, 느끼고, 연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저자 소개 (저자: 가와타 후미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증언한 배봉기 할머니의 삶을 취재한 《빨간 기와집》을 1987년 출간하며, ‘재일 여성들’의 삶과 강인한 태도, 그리고 진실을 세상에 알린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이다.
1943년 일본 이바라키현에서 태어난 가와타 후미코는 1966년 와세다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근무하던 중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바로 어제의 여자들》(1979) 《여자들의 자장가》(1982) 등 여성들의 삶을 기록하고, 1977년 배봉기 할머니와의 만남을 계기로 위안부와 관련한 책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황군 위안소의 여자들》(1993) 《전쟁과 성》(1995) 《인도네시아의 위안부》(1997) 《위안부라고 불리는 전장의 소녀》(2005) 등 모두 후미코가 직접 현장을 찾고 증언자들과 인연을 맺어 기록한 책이다.
후미코는 위안부 피해 사실 증언자를 취재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전후 보상 실현 시민 기금’과 ‘일본의 전쟁 책임 자료 센터’ 공동대표,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지하는 모임’ 사무국장 등을 역임하며, 2023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묻는 일에 앞장섰다.
♣ 목차
서문│알아야 할 역사에 내딛는 첫걸음 9
1 빨리 태어나서 손해를 봤어 17
2 둥둥 떠가는 솥, ‘주워서 살았어’ 41
3 대충 묻었어, 죽으면 죽은 채로 71
4 히로시마 거리가 통째로 사라졌어 101
5 겪을 대로 겪었지, 고생은 나의 힘 131
6 밀항선을 탔다가 인생길이 틀어졌다 157
7 아저씨, 빨간 종이로 된 약 주세요 181
8 여기는 40번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출발점은 여기야 205
9 전쟁도 쓰나미도 삶을 빼앗지는 못해 229
10 피붙이가 헤어지면 안 돼, 절대로! 253
11 우리 학교는 정말 창유리가 없었어 277
12 후쿠시마, 원전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305
맺는말 | 식은땀을 흘려가며 들은 이야기들 329
옮긴이의 글 | 일본 여성이 직접 마주한 재일 여성의 삶과 기록 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