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오재식
챗GPT 열풍이 한차례 휩쓸고 가면서 만인이 인공지능의 존재와 그 파급력을 인지한 가운데, 당대의 인류에 주어진 과제는 ‘다가온 인공지능의 시대에 도태되지 않는 것’이다. 이미 인공지능의 시대는 도래했으며, 기술의 진화 속도에 뒤처진 인류는 딥페이크 범죄라는 최악의 사건을 맞이하여 손도 못 쓴 채 속수무책인 상태다. 모두가 예견했고 상상했으나 아무런 대비도 사후대처조차 미흡한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즉 인류는 인공지능을 맞이할 준비가 미흡한 채 사회에 들이고 만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류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개인과 사회, 기술과 리터러시가 엮이는 방식을 연구해온 응용언어학자인 저자는 서두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술을 단지 인간의 반대편에 놓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중재mediation의 관점에서 우리의 삶과
연관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의 행위와 의미·관계와 사고 나아가 존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바라보는 겁니다(본문 82p).
챗GPT가 화두에 오르며 마치 유행처럼 관련 서적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으나, 대개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준비할 것인가, 어떤 변화가 생길 것인가 등 겉핥기 식 분석 또는 활용 측면이 중점인 도서가 주류였다. 그러나 저자는 논의의 관점을 바꿔 리터러시, 즉 인간의 읽기-쓰기를 통해 관계론적인 측면으로 보고자 한다.
도구의 생태계가 변화하면 앞으로 우리가 쓰기를 대하는 태도·읽기와 맺는 관계·사람과 사회와 맺는 관계·필자로서의 정체성이 달라지리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본문 281p).
즉 인공지능과 관계를 엮여나갈 인간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리터러시 관점에서 서술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내용이다. 서평의 첫머리에 서술한 것처럼, ‘다가온 인공지능의 시대에 도태되지 않는 것’을 위한 능력 중 하나가 바로 문해력이다. 최근 떠오른 사회문제가 젊은 세대의 문해력 저하에 관한 것이며, 이 때문에 교육, 미디어 등 각종 분야에서 리터러시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교육에선 선생을 속여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과제를 제출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이렇듯 과정을 무시하고 합리적인 결과를 추구하게 된 건 기성세대가 만든 사회적·제도적·구조적 압력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 애들은 독서를 안 한다, 요즘 애들은 어려운 말을 모른다, 요즘 애들은 글을 못 쓴다 등 이런 사회문제가 비단 젊은 세대의 잘못만이 아니란 것이다.
리터러시에 대해 숙고하면서 계속 던지게 되는 질문은 ‘우리가 언제 리터러시를 제대로 배우고 가르친 적이 있었는가’입니다. 삶과 사회와 리터러시를 엮어 더 나은 삶의 조건을 만들어 가는 리터러시를 배우고 가르치기보다는 사회경제적인 보상을 최대화할 수 있는 자본이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전략으로서 리터러시를 대해 왔던 것이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본문 448p).
리터러시 교육만 봐도 ‘코딩을 배워야 한다’‘딥 러닝을 알아야 한다’‘인공지능을 모르면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는 여기저기에서 들리지만, 새로운 기술이 어떻게 새로운 리터러시의 지평을 열어젖힐지, 도리어 기존의 리터러시 교육이 가진 기능성을 저해하는 것은 아닌지, 인공지능이 사회적·
교육적·법적·의학적으로 사용될 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무엇이고 실제 용례에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이슈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에 대한 논의는 턱없이 부족합니다(본문 356p).
프롬프팅은 글쓰기의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닙니다(본문 258p).
컴퓨터에 인풋을 입력하면 아웃풋이 생기듯 인공지능은 프롬프트 값을 입력하면 작업의 결과물이 생성된다. 사회에선 오로지 결과물의 가치만을 중시한다. 기존의 교육·사회 제도에서 그러한 양상을 추구했고 인공지능 시대에 이르러 프롬프팅을 잘하는 것이 능력의 본질이 됐다. 기술적 진화와 사회문화적 대응의 불균형이 바로 이러한 사태를 초래했고, ‘프롬프트 리터러시’라는 말이 생기듯, 상호성·관계성을 무시한 채 ‘프롬프트를 잘 만드는 능력’만을 과하게 강조하는 풍조가 생겨난 것이다.
교육과 노동의 생태계 속에 새로운 비인간 존재가 자리를 잡아갈 때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단지 새로운 도구를 얼마나 잘 활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새로운 비인간 존재와 공존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더 나은 인간이 되는 법을 고민하는 일입니다(본문 393p).
저는 리터러시를 인간과 비인간을 포함한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광범위하며 다면적인 영향을 지혜롭게 받(지않)을 수 있는 실천으로 이해합니다(본문 494p).
결국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리터러시는 이제껏 우리가 가정하고 당연시하며 권력을 부여했던 리터러시에 대한 뼈아픈 성찰 즉 리터러시-들과 권력의 지형을 비판적으로 조망하는 ‘비판적 메타-리터러시’로 나아가야 합니다(본문 483p).
즉 읽기와 쓰기의 밀도를 저하시키는 도구적 효용성을 지향하던 전통적인 리터러시 개념에서 벗어나, 인간 위주가 아닌 인공지능과 상호작용하는 비판적 메타 리터러시로 돌아가, 인공지능이 리터러시 생태계를 바꾸고 있음을 인정하고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제대로 된 관점과 태도 정립이 필요하다.
♣ 저자 소개 (저자: 김성우)
응용언어학자. 개인과 사회, 기술과 리터러시가 엮이는 방식을 연구한다. 2000년 전후 웹 기반 교육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컴퓨터를 활용한 언어 학습에 대한 논문을 썼고, 이후 일곱 해에 걸쳐 현업에서 테크니컬 라이터·이러닝 기획 및 프로젝트 매니저·학습 게임 콘텐츠 개발자로 일했다.
『영어교육을 위한 IT』(공저) 『단단한 영어공부』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공저) 『한글, 문해력, 민주주의』(공저) 『영어의 마음을 읽는 법』 등을 썼으며 『리터러시와 권력』의 번역에 참여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강사와 캣츠랩 연구위원으로 일하며 대학 안팎에서 ‘비판적 인공지능 연구와 언어교육과정’ ‘영어교육공학’ ‘영어로 논문 쓰기’ ‘리터러시 연구 입문’ ‘권력, 다양성, 사회정의를 위한 사회언어학’ 등을 강의한다. ‘삶과 행성을 위한 리터러시’를 화두로 강의와 연구를 이어 가고 있으며 산책길에 만나는 고양이와 오리, 스러지는 해질녘 하늘에 자주 마음을 빼앗긴다.
♣ 목차
추천의 말
들어가는 말: 생성형 인공지능의 부상과 새로운 읽기-쓰기의 상상력
1장 읽고 쓰는 인공지능이 던지는 질문들
2장 인간의 읽기-쓰기, 인공지능의 읽기-쓰기 : 개념적 탐색
3장 리터러시 생태계 어떻게 바뀔 것인가 : 매개·전도·속도·저자성과 윤리
4장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 만든 ‘질문이 모든 것’이라는 환상
5장 사람은 기술을 만들고 기술은 사람을 만든다
6장 비판적 메타-리터러시 혹은 읽기-쓰기의 미래
나오는 말: 리터러시,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되기.
더 작은 나로 살아가기
주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