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박한민
기원전의 길가메시 서사시부터 진시황까지 인류는 언제나 영생을 꿈꿔왔다. 의료기술의 발전사는 각종 질병과 사고로 발생하는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한 눈물겨운 발악이었다. 이런 노력으로 인간의 기대수명은 기하급수적으로 길어졌으며 이제는 노화마저 예방과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보는 인식이 우세해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8년 노화에 질병코드(XT9T)를 부여한 것이 그 증거이다. 하지만 죽음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인류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인간은 반드시 죽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작가는 왜 인류에게 죽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걸까? 죽음이야말로 우리들의 선택과 가능성, 자유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다르다. 역설적으로 제한(무엇보다 죽음)이 자유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 어떤 제약이나 제한, 규칙도 없이 원하는 곳에서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컴퓨터 게임과 같은 삶을 산다면 우리의 행동에 그 어떤 의미도 없을 것이다. 어떤 규칙도 없고 어떤 결과물도 남기지 못하는 게임이 우리의 삶이 된다면 그건 게임이 아닌 그저 지루한 시간 낭비일 것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자유로운 주체가 되어야 한다. 자유로운 주체는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고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즉 자기 손으로 서로 다른 가능성을 비교하여서 한 가능성을 위해 다른 가능성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목적과 의식을 가지고 행하는 가능성의 가지치기는 죽음이 없는 무한한 삶에서는 불가능하다. 의미를 지닌 자유로운 주체의 삶을 위해서는 죽음이라는 제한이 필요하다.
죽음은 가장 필요한 제한이다. 죽음이 없다면 우리가 계획하고 추진하는
모든 일의 가치가 떨어진다. 죽음이야말로 선택과 결정의 원천이기에 의미의 원천이다. - 14p
그렇다면 우리는 죽음 없는 삶을 왜 원하는 것일까? 그건 우리가 지금의 삶,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증상으로 저자는 ‘시간 병’에 대해 말한다. ‘시간 병’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아 정체성과 관련된 행동, 즉 과거 자아와 미래 자아와 관련된 느낌이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현상이다. 우리는 당장 5분 뒤의 나를 5년 뒤의 나보다 더 잘 대해준다. 5분 뒤의 내가 지금의 나와 더 긴밀하게 연결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 전반에 거쳐 얻고 소모하게 될 귀중한 자원(시간, 돈, 에너지 등) 을 어떻게 분배해 사용해야 할지 항상 고민하면서도 대부분은 먼 미래의 나보다 더 가까운 미래의 나에게 이득이 되는 행동을 한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먼 미래에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어떤 결정이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그런 최종결정이 언젠가 일어날 것이라고 상정한 덕분에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현재의 삶을 직시하며 주도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자신에게 남은 시간 전반에 대한 고민과 준비를 영원한 미래 속 최종결정에게 미루며 눈앞의 쾌락에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작가가 우리에게 죽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죽음이야말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 주는 중요한 한계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근시안적인 시야만을 가지고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죽음을 의식함으로써 주어지는 불안감과 경계는 스스로 많은 것을 되묻게 한다. 우리의 삶에 중요한 대부분은 선택 속에서 주어진다. 어디에 살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직업을 얻는 등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문제는 다른 가능성을 포기하고 남은 가능성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리고 우리가 한 가능성을 고르고 다른 가능성을 포기하는 선택의 문제를 만들어 내는 원인인 죽음을 마주 보는 순간 몇십 년에 불과한 짧은 인생을 살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바라는지 그리고 남은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갈지 진심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인생이 짧지 않다면 우리는 애초에 그런 선택의 문제와
가능성의 가지치기라는 문제에 직면하지 않는다.
…
인생은 우리가 그것을 낭비할 때만 짧은 게 아니다.
바로 그 짧음이 인생의 본질이다. - 164p
개인적으로 처음 책의 서문을 읽으면서 ‘그냥 당연한 이야기를 적어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삶에 영향을 끼치는 죽음에 관한 논의가 심도 있게 전개되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막연하게만 느꼈던 죽음의 역할 혹은 의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고 나의 삶을 돌아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작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있어 죽음은 무엇인지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책임은 틀림없다.
`♣ 저자 소개 (저자: 딘 리클스)
호주 시드니대학교 현대 물리학 역사 및 철학 교수이자 ‘시드니 시간 센터Sydney Centre for Time’의 공동 소장이다. 2004년 리즈대학교에서 양자 중력의 개념적 문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2005년 캘거리대학교에서 박사 후 과정을 통해 복잡계 이론을 인구 건강에 적용하는 연구를 했다. 저서로 『과학 철학이란?What is Philosophy of Science?』, 『물리학의 철학Philosophy of Physics』, 『끈 이론의 역사: 이중 모형부터 M이론까지A Brief History of String Theory: From Dual Models to M-Theory』 등이 있다.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는 미국 대학 및 연구 도서관 협회 산하 ‘초이스’ 선정 우수 학술 도서로, 리클스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깨우쳐 주고, 그 유한함을 활용하는 삶의 지혜를 전한다.
♣ 목차
서문
감사의 말
1장 다시 보는 인생의 유한함
2장 영원히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3장 죽음이 예정된 삶은 무의미할까
4장 미래는 우리 자신의 현재가 된다
5장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기
6장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삶
7장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8장 삶은 기적이지만 죽음도 기적이다
참고 문헌 및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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